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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주어(主語)로 삼자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2/03/18 [14:16]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우리의 꿈은 어떤 빛깔인가? 꿈(dream/ vision)을 잃어버린 사람, 바벨론의 통치자 느부갓네살(Nebuchaednezarr/ 재위 B.C605-562년)은 꿈을 잃자 정서불안, 권력 남용, 생명경시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박수와 술객에게 그의 미래를 점치게 하는 나약한 권력자로 추락해 가고 있었다. 꿈은 있었지만, 그 꿈이 너무 커서 패가망신한 사람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Absalom)이다. 그의 꿈은 대권 도전이었다.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천륜도, 법도, 생명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꿈은 비극으로 끝난다(신 13:1-5).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빛깔이 다를 뿐이다.

 

성경엔 두 종류의 꿈을 제시한다. 하늘에 속한 꿈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꿈이다. 벧엘에서의 야곱의 꿈. (창 28:10-15) 그 발(Chebar) 강변에서의 에스겔의 꿈(겔 49-1-12) 예루살렘에서의 이사야의 꿈(사 40:1-57) 욥바에서의 베드로의 꿈(행 10:3-5) 드로아에서의 바울의 꿈(행 16:6-10)이 이에 해당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꿈은 종종 인간의 생각과는 다른 빛깔이다. 그러나 그 꿈들은 반드시 성취된다. 다만 그 성취과정은 인내와 고난의 가시밭길이다. (사 53:1-12, 고후 11:23-33) 땅에 속한 꿈은 아래(인간)로부터 생긴 꿈이다. 시날 대평원의 바벨탑의 꿈(창 11:1-9),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뺏은 아합과 이세벨의 꿈(왕상 21:1-26), 한 부라 농부의 웰빙의 꿈(눅 12:13-21), 제자들의 이스라엘 국가 재건(정치적으로)의 꿈(행 1:6-7), 돈으로 권능을 사려는 시몬의 꿈(행 8:18-24) 등이 이에 속한다. 땅에 속한 꿈들은 그 유혹이 달콤하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그 꿈은 언젠가 깨지고 만다. 그래서 헛되고 공허한 것이다.(전 5:3, 시 73:20, 렘 27:9, 겔 22:28)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도 어둠의 세계이다. 선지자 요엘의 메시지는 매우 소망적이다. 메시아가 오시면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했다. (욜 2:28/ Your old men will dream,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미래는 꿈을 가진 자들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을 부여주실 것이다. 그 꿈의 종류에 따라 장미 맛 세계가 올 것인가. 회색빛 세계가 올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최우선시한다. 이익도, 편의도. 명예나 향락도 자신부터 챙긴다. 자기가 먼저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남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I/ Me’)을 주어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화도 자기중심적이다.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찍어다 집을 짓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장대 들고 망태 메고 아예 달까지 따러 나선다. 심지어 낮에 나온 반달까지도 그냥 두지 않는다. 모두 나 중심으로 소유하고, 누리려 한다. 이 같은 ‘1인칭 단수 문화’는 소망이 없다.

 

이제 1인칭 복수주어(We/ Us)를 보자. 군중을 내세우는 부류다. 군중의 세나 다수의 여론에 의해 살아가려는 부류이다. 다수가 곧 진리인가? 다수가결이면 최선인가?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말이 있다. 성경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치 말라고 가르친다. (출 23:2-3) 다수가 진리라면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중의 환영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셨다. (요 6:15) 다수, 군중은 때때로 좁은 길을 피해 넓은 길로 인도하는 멸망의 행렬일 수 있다.

 

생명이 아닌 것을 주어로 집착할 때도 있다. (재물, 조직, 명예)를 좇다가 신기루인 것을 깨닫고 사라진다. 주어가 인간 중심이면 비관적이다. 절대 인본주의의 결국을 보면 안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인물을 모델로 삼아 닮아가도록 하는 것도 위험하다. 따라서 우리 인생의 모든 활동에서 주어는 항상 삼위일체 하나님이어야 한다. 주어의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냐/인간의 선행이냐의 문제다. 성경의 주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요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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